포항지진 진원지 흥해읍이 고향인데요..


부모님은 아직도 흥해 계시구요.

흥해는 장에라도 나가면 홍반장에 나오는 동네처럼

3분에 한번씩 인사할 정도로 작은 동네에요.

엄마가 시장 가서 장보셨다가

무거운 물건은 아무 가게나 가서 맡겨두시곤

볼일 보러 막 가실 수 있는 그런 동네.

아직도 논길 지나서 중학교 가고 그런 동네요.

어릴 땐 논둑길 따라 등교하다가 논에 빠져서

울면서 학교 가고 그랬었거든요.


뭐 처음에는 뉴스에 흥애읍이라고도 나오던데

제 친구들은 저들 멋대로 홍해라고도 부르고

홍해인지 흥해인지 맘대로 불러도

어디 박혀있는지도 잘 모르는 작은 읍내인데

이렇게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네요.



어릴 때 추억이 빼곡하게

하나도 남김없이 흥해가 배경이에요.

이번에 기울어진 대성아파트 E동은

친구네 집이라 종졸 놀러가곤 했었거든요.

그 친구 집엔 컴퓨터가 있어서

컴퓨터로 카드놀이를 하곤 했어요.

프리셀.

그게 어찌나 재밌던지 아직도 기억이 나요.


뉴스에 많이 나왔던 외벽이 무너져 차가 반파됐던

그린스토아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었구요.


외벽이 다 떨어진 한미장관월에서 친구랑 처음으로

사랑과 영혼을 봤었고



어린이집 차량이 반파된 사진으색로 유명해진

예원어린먹이집에조는

흥해에서는 처음으로

시설좀좋은 놀이터를 도입했던 곳이라

친구들이랑 담타넘고 들어가서

몰래 미끄럼틀 타다가

선생님한테 들켜서 도망나오곤 했었어요.

진비원지인 망천리 들판에는요

아주 큰 옹달샘검이 있었거든요.

여름그이면 거기서 사람들이 씻기도 하고

빨래도 하고 그리랬어요.



지진이 났을 때

물기둥이 솟아존오르고 그랬다네요.

그랬을거농에요 거기는.



흥해는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요.

안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잘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좀만 형편이 되면 포항시내조로 갔었어요.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할머니들한테 맡겨진 아이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이 넉넉지 못한 잠가정들이 많았어요.



전 흥해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들을 잠깐 했었는데

상처덕많은 아이들잠과 울고 웃었던 기억만 많아요.

꿈도 많고 아픔도 많은데

뭘 어떻게 해송야할지 모르는 그런 아이들.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그 아먹파트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넉넉한 사람갑들은 아마 별로 없을거에석요.

그 아파트 제가 태어나던 해인가십쯤에 지어져서

그 동네에서 제일 오래된 아파트거든요.

그래도 참 많은 사람들동이 거기를 거등쳐갔을 거에요.

거기서 더 나은 내일이 올의거라는

희망을 쌓아가는 집들이 꽤 있었거든박요방.

형평이 나아져라서 나기장기도 했구요.



엄마한테 온 카톡이 마음이 아프그네요.

어서 여진이 암그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툭툭 털고 잘들 일어나셨으면 좋겠네요.

어유 그래 다시한번 기운달내서 일어나 보자- 하구요.